- The People You Can Meet on the Street
우리의 만남은 조금은 인연이랄까? 타투샵에서 여러 폰트를 맞춰 보면 겨우겨우 최종본을 확정하고, 예약 일에 맞춰 샵에 갔을 때, 예약 관리해주던 여자가 무슨 언어로 새기는 거냐고 물었다. 스페인어라고 대답했더니, '그거 재밌네, 너 담당 타투이스트가 스페인어 할 줄 알아. 콜롬비아에서 왔거든.' 그렇게 만나게 된 Johann은 내가 한국에서 스페인어를 배웠다니까 신기해 하더라.
나를 보자마자 콕콕 찔러대던 Johann과의 첫만남 후 3주가 흘러 리터치의 순간이 다가 왔고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아, 리터치 무진장 아프다..) 쓰라린 리터치를 견뎌내고 가게문을 나섰으나 다음 문신으로 예정 중인 연꽃이 생각나 다시 가게로 발걸음을 돌리는 찰나, 때마침 Johann이 밖으로 나온 덕분에 커피 한 잔 하며 이런 저런 얘기 나눌 수 있었다.
- 소개해달라.
이름은 Johann이고 Colombia에서 왔다. 현재 Sydney에서 문신사로 살고 있으며 남성(중요)이다.
- 호주에는 왜 왔는가.
영어공부? 처음 6개월간 영어를 공부했다. 그리고 business management diploma를 끝냈고 영어 공부를 다시 하고 있다. 대학에 들어 가는 것이 다음 목표다.
- 타투를 하면서 네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도 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뭐든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다. 어렵지만 중요한 일이다. 열정을 따르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또 행복하지 않다면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고국에서 타투샵을 열었다가 닫은 후 다른 사업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열정과는 상관 없는 분야라 할 일이 없었다. 할 게 없었다.
- 대학과 타투 중 선택 해야만 한다면?
이건 어렵다. 내가 대학에서 공부를 더 한다면 내가 더 나은 문신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문신도 계속 할 것이다. 그만 두지는 않을 것 같다. 사진이든 그림이든 예술과 관련된 것들을 계속 하고 싶다.
- 처음으로 문신을 언제 시술했나?
내 친구 팔뚝에 전갈을 새겨줬다. 그 친구를 작년에 다시 만났다.
- 처음 해준 문신이 괜찮았나? 혹시 다시 만났을 때 지우진 않았던가?
물론 그 친구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나쁘지 않았다. 난 재능이 좀 있으니까. 하하.
- 생애 처음 한 타투는 언제였나?
96년도인가, 오른팔에 문신을 처음 했다. 지금은 커버업으로 남아 있지는 않다.
- 왜 지웠나?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다시 새기려고 커버업 했다. 오른쪽 어깨에 예수님의 옆모습을 새겼는데 어릴 때 한거라 키가 자라고 살이 찌면서 모양이 점점 이상해 졌다. 그래서 또 커버업했다.
- 시술했던 타투 중 가장 큰 건 뭐였나?
등 전부를 해준 것. 10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워낙 커서 그냥 바늘을 움직이기만 하면 되니까.
- 가장 독특했던 문신은?
내가 이 샵에 처음 왔을 때, 자꾸 엉덩이에 사인을 하라고 하더라. 사이먼이라는 샵키퍼로 같이 일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날 보더니 바지를 까고 자기 엉덩이에 사인을 하라고 했다. 무척 이상했지만 재미있었다. 그의 엉덩이에는 수많은, 같이 일했던 아티스트들의 사인이 가득하다.
또 내가 문신을 하면서 손가락에 해준 건 네가 처음이다. 호주에서도 흔하지는 않은 부위인 것 같다. 나도 손과 손목 쪽은 문신하지 않는다. 보통 문신을 이미 많이 한 사람들이 손가락쪽에도 한다. 하지만 한 두개 하는 보통 사람들은 거의 손가락에는 안하는 것 같다.
다른 것들은 보통 우리가 쉽게 보는 문신들이다. 또 각각의 문신은 개인적으로 깊은 의미가 있다. 자기 표현이기도 하고. 모두 특별한 뜻이 있는것이니까.
- 호주에는 얼마나 더 머물 생각인가?
내년에 결정될 거 같다. 일단 대학 때문에 IELTS를 봐야 한다. 시험 결과가 나와야 알겠다. 만약 안되면 또 다른 곳으로 가면 될거다.
- 한국에는 아직 타투가 불법이다. 그런데 생각보
다 많은 사람들이 타투를 한다.
응 너도 했잖아!
- 그런데 호주에서 타투나 피어싱을 바라보는 분위기는 아주 좋다. 얼굴을 뚫고 팔뚝에 문신이 있는 사람들도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우체국에서도 일 할 수 있으니까.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곳에 문신 같은 것이 있으면 좀 문제가 될 때도 있더라.
콜롬비아도 마찬가지다. 내가 처음 타투를 했을 때도 사람들은 무슨 생각하는거냐, 니 인생에 그걸로 뭘 하려고 하는거냐. 압박이 좀 있었다. 그렇게 고운 시선으로 문신이나 피어싱을 한 사람을 바라보지는 않는 분위기다.
- 그럼 부모님은 어땠는가?
난 많이 독립적인 편이다. 항상. 하지만 좀 힘들긴 했다. 내가 나의 길을 찾았는데 홀로 다 해야 했으니까. 처음 내 모습을 엄마가 보셨을 때, “내가 너 얼마나 아끼며 키웠는데 이제 몸을 이렇게 해서 왔니?”라고 하시기는 했다. 문신을 하기 전에는 피어싱을 좋아해서 얼굴에 꽤 많았었다. 문신을 했을 때 “또야?!”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반대하지는 않았다. 나의 선택을 존중해 주셨고 대신 그 선택을 나 혼자 해 나가게 하셨다. “그래 그걸로 네가 돈 벌면 되겠다.” 정도?
또 심하게 반대했던 여자친구가 하나 있기는 했다. 매번 머리 염색하고 얼굴을 뚫고 문신을 하니 여자친구가 엄청 싫어했는데, 다음부터는 안 한다고 하고 또 자꾸 키워 나갔다. 훗.
- 나도 한국에서 평범하게 살려면 이런 문신은 아니다 생각했다. 하지만 뭐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 도전한 거고. 문신을 막 했으니 아무래도 외국으로 나가야겠다.
스페인으로 가라! 칠레도 살기 좋은 곳이다. 대신에 칠레스페인어는 추천 안 하겠다. 알아 듣기가 힘들 거다. 연습만 좀 많이 하면 금방 늘 수 있을 거다. 통역사나 선생님 같은 거 하고 싶은 건가?
- 물론 그러면 좋겠지만 난 라틴어나 로망스어 같이 좀 돈 안되는 쪽으로 관심이 많다. ㅋㅋ
그래도 니가 좋아한다면 그게 제일 좋은 거다. 내 생각에 호주에서의 내 삶은 내 인생 두번째 시작이다. 좋아하는 것 하면서 새롭게 시작해라.
- 물론 하고 싶은 거 최대한 하려고 노력은 한다. 근데 난 이것 저것 관심이 너무 많은 걸.
할 수 있으면 다 해보는 게 어떠냐. 피어싱이나 문신은 우리 샵에도 코스가 있어서 배울 수 있다. 언제 쓸지는 모르지만 또 언제 써먹을 수 있을지 누가 아냐. 나도 오래전에 타투를 했다가 그만 두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언젠가 또 써먹을 일이 올 수 있다. 그건 그렇고 이건 어디다가 올릴건가?
-블로그가 하나 있다. 그냥 개인 블로그인데 내가 만난 사람들 얘기를 담고 싶다.
스페인어 학원 시간때문에 얘기를 흐지부지 끝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Sydney Tattoo World(http://tattooworld.com.au)에 가면 Johann에게 시술 받을 수 있다.
04/2011 현재 Johann은 고국으로 휴가차 떠났다.
22/03/2011